새우잡이배·염전으로 다섯 번 팔려간 50대…“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박세정 기자 /  입력 : 2016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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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모씨(53)는 어쩌면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남 신안의 한 섬에서 태어난 정씨는 현재 경찰이 어렵게 찾아낸 먼 친척 집에서 머물고 있다. 최근 경찰의 의뢰로 진료한 병원은 정씨에게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내렸다.
경찰이 정씨의 주민등록을 조회했지만 2012년 말소됐다. 정씨는 가족이 없었다. 친척은 경찰에 “정씨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다. 정씨의 형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소재는 알지 못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기는 하지만 아주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는 아니다”는 경찰은 “현재 정씨가 친척집에서 다친 상처를 치료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평생을 전남 목포역 인근에서 노숙생활을 해왔던 정씨에게 지난 5년은 악몽 이었다. 정씨가 남들보다 지능이 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노예처럼 다섯 번이나 팔아 넘겼다. 뱃일을 하다 크게 다쳐 나온 보험금까지 모두 유흥비로 써버렸다.
정씨는 이들에게 ‘손 쉬운 돈벌이 수단’이었다. 2011년 10월 정씨는 당시 목포시에 있던 신안군청 인근 나무의자를 집 삼아 잠을 청했다. 인근 여관에서 머물고 있던 김모씨(45)는 그런 정씨를 눈여겨봤다. 그는 정씨에게 접근해 “잠을 재워주고 밥을 사 주겠다”고 했다.
김씨가 사준 ‘밥 한끼’는 정씨를 5년 동안 옭아 맨 족쇄가 됐다. 김씨는 “좋은 직업이 있는데 취업해 보겠느냐”고 한 뒤 정씨를 충남 태안의 새우잡이배 선주에게 데려갔다. 미리 받는 임금인 선불금은 김씨가 받아 챙겼다. 정씨는 돈 한푼 받지 못하고 꼬박 1년을 배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정씨는 “280만원을 선불금으로 김씨가 받아간 것 같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이보다 액수가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 갈 곳이 없어진 정씨는 다시 평생을 살았던 목포로 돌아왔다. 목포역 주변에서 노숙을 하던 정씨에게 2013년 초 이번에는 이모씨(56)가 접근했다. 불법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던 이씨는 정씨를 꼬드겨 신안 한 섬에 있는 새우잡이배 선주에게 넘겼다. 이씨는 그 대가로 선불금 1300만원을 받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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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에서 열 달을 일했지만 이번에는 선주 변모씨(72)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변씨는 2014년 1월 “350만원의 빚이 남아있다”며 정씨를 신안의 한 염전에 400만원을 받고 넘겼다. 정씨는 대상포진에 걸려 목포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염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정씨에게 찾아온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법성인오락실을 운영하다 적발돼 1년간 복역하고 2014년 9월 출소한 김씨는 목포역 인근을 배회하던 정씨에게 다시 접근했다. 그는 “염전에서 일하고 못 받은 돈을 받아주겠다”며 정씨를 은행으로 데려가 통장을 만들도록 했다. 실제 염전 업주에게 전화를 건 김씨는 정씨의 남은 임금을 받아 내기도 했다.
환심을 산 김씨는 또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2015년 초 선불금 500만원을 받고 정씨를 전남 영광의 새우잡이배에 넘겼다. 정씨가 3개월을 일하고 돌아오자 지난해 7월에는 다시 목포의 고기잡이배에 500만원을 받고 취업시켰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고기를 잡다 왼쪽 손등을 크게 다친 뒤에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정씨를 찾아온 김씨의 착취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정씨 통장에 입금된 산업재해보상금 1230만원까지 모두 찾아서 유흥비로 탕진해 버렸다.
첩보를 입수한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4월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4일 정씨를 강제로 취업시킨 뒤 임금과 산재보험금을 가로챈 혐의(영리목적유인·공갈 등)로 김씨를 구속했다. 또 직업소개소 업주 이씨와 선주 변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모두 정씨의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기는커녕 노예처럼 팔아넘기기를 반복했다”면서 “섬 지역 등에서 사회적 약자 등을 대상으로 노동 착취를 일삼는 악덕 업주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섯 번 팔려간 정씨의 5년
<2011년 10월>
-김모씨(45), 선불금 받고 충남 태안 새우잡배로 팔아넘김. 정씨 1년간 일함.
<2013년 초>
-이모씨(56), 목포로 돌아온 정씨를 1300만원 받고 신안 새우잡이배로 넘김. 정씨 10개월 일함.
<2014년 1월>
-선주 변모씨(72), 계약 끝난 정씨 400만원 받고 신안 염전 넘김.
<2014년 여름>
-정씨 염전 노동 중 대상포진으로 목포 병원에 입원.
<2014년 9월>
-김씨, 1년 복역후 출소. 다시 만난 정씨를 500만원 받고 전남 영광 새우잡이배에 넘김.
<2015년 7월 >
-김씨, 정씨를 목포의 고기잡이배에 500만원 받고 취업시킴.
<2015년 12월>
-정씨 고기잡이 중 왼손 크게 다쳐 병원 입원. 정씨의 산재보험금 1230만원 김씨가 유흥비로 탕진.
<2016년 7월>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씨 구속, 이씨와 변씨 불구속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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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정 기자 / 입력 : 2016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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